싱어송라이터 요조(신수진님)이 2009년 서울예대 학보에 기고한 글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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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딱 저 감정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세상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있다.

 

비슷할 것만 같은 사람들의 가치관이란거 일을 통해 만나고 경험해보면 정말 너무 다르다.

 

가끔은 평생 좁혀도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을 정도로 다른 우주다.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괜히 중요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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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

마구적는 일상관 2019. 6. 30. 02:12

 카라반을 봤을 때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올라타서 '좋군' 하며 푹 쉬는 아버지 모습이 왠지 모르게 떠올랐었다. 상상 속의 아버지는 이런 호사를 누리기 위한 가격은 전혀 모른채로 그저 좋아하시던 순수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신 채로, 노곤해하시는 표정을 함께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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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와 친하냐고 물어보는 질문을 매우 싫어한다.

 

 친함을 느끼는 기준도 사람마다 매우 다르고 때로 친하냐고 물어보는 것이 격의없이 서로 막말을 하고 반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는 기준이 되는 것 처럼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을 쉽게 대신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정말로 네가 그 사람과 어떤 교감을 나누고 정서적으로 서로 편한 상태인지를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에 편한 사람과 친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교감을 나누는 것은 언제든 좋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들이나 아무나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얘기들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 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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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은 음악 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중학교 때 봤던 노다메 칸타빌레의 여주인공 우에노 주리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1시간 반이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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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현실적인 얘기지만 나는 살면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평생 근로소득으로 사는 것 보다는 조금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의 필자 제현주씨에게 돈은 그런 존재다. 남들 버는 것 보다는 훨씬 많이 벌어본 사람에게 있어서의 돈이 주는 그런 정도의 존재.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우리의 기대대로 걱정도 고민도 없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거 같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 제현주씨에게는 벌어들이는 돈이 주는 자유보다, 소비로 부터의 자유를 얻고 스스로 원하는 일이 직업이 아닌 놀이와의 그 어떤 경계선 즈음에 있기를 바랐나보다.


경제적 수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일은 수익을 추구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방법은 일견 두 가지 같아 보인다. 돈을 너무나도 많이 벌 수 있거나,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 지거나. 하지만, 제현주씨의 경험을 살짝 엿본다면 어쩌면 그 방법은 하나뿐인지도 모르겠다.

내 일의 특성상 10시 이후에 퇴근할 때면 회사의 계산으로 택시를 타곤 하는데, 이 버릇 때문인가 평소에도 내 돈으로 택시를 타게되곤 한다. 소비수준이 올라갔다는 걸 느낄 때 즈음엔 택시가 주는 편안함에 이미 녹아버렸다. 하지만 택시에서 혼자 심심하게 가는것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구경하고 돌아다녀도 충분히 행복했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 경제수준이 꼭 필요한건가 물어보게 된다. 지금의 경제 수준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조금은 더 미련없이 적은 돈이더라도 조금 더 가슴 뛰는 일을 향해 박차일어날 수 있게될까.

정말 그저 일일 뿐인데, 먹고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별 것 아닌 그저 일일 뿐인 것에 나를 투영하고, 욕망을 투여하려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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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마구적는 일상관 2016. 3. 28. 15:56

서울 광화문역 인근 테이크아웃 커피점 게시판에 쿠폰이 가득 붙어 있다. 일정한 갯수의 도장을 찍으면 커피나 음료 한 잔이 공짜다. 자신만 알 수 있는 별칭을 적은 쿠폰으로 자욱한 게시판에서 유독 굵은 사인펜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과장이다! ‘그래서 어쩌라고?’는 풋풋한 샐러리맨들의 속마음일 테고, 강파른 팔부 능선을 지나 살아남은 상사의 눈에는 하룻강아지 익살로 보일 것이다. 밑에서는 치받고 위에서는 몰아붙이는 우리 시대 과장님, 오늘도 집에 돌아가 가장님으로 버티려면 쿠폰에라도 하소연해야 하시는가. 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사진 허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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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언어에서 포인터를 어렵게 만드는 주범을 찾아내었다 -_-


바로 * 이녀석의 쓰임 때문이다.

사실 포인터의 개념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아보인다.

모든 value들에는 주소값(reference)가 있고, 그 주소값을 저장하는 변수가 포인터 변수다. 까지 정도 이해하면 얼추 개념은

알게 되는거 같은데.. 음 바로 * 이 별 녀석의 쓰임이 쫌 상황에 따라 바뀐다. 정리해보면,


==============================================================================


[* 의 사용법]

1.  초기화 및 선언시 : 포인터 변수 좀 만들게~
2. 사용시에 : Value값에 접근 좀 할게~


[예시]

1. 초기화 및 선언시 

int num1 = 20;

int *pnum = &num1;


2. 사용시에

printf("%d \n", *pnum);


===출력시===

20

Program ended with exit code: 0



1에서는 *pnum에 분명, 주소값을 저장하고 있는데 2의 예시에서는 *pnum을 불러내었더니 value값이 튀어나온다. -_-

단어 한개로 써놓고 맥락에 따라 해석을 해야하는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씨언어 포비아를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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